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 분류별 > 고전국역총서 >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제33권 > 신우 4 무진 신우 14년(1388), 대명 홍무 21년 ... ○ 5월 1일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다. ○ 우가 대동강에서 마음껏 즐기고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우는 나가 놀 때마다 호악을 연주하고, 광대를 시켜서 갖은 놀이를 벌였으며, 최영은 날마다 군사를 거느리고 출입하며 피리를 불었다. 왕과 신하가 음란하니 백성들이 원망하고 탄식하였다. ○ 왜선 80여 척이 와서 진포(鎭浦)에 정박하고 가까운 여러 고을을 침범하였다. 우가 상호군 진여의(陳汝宜)를 전라도ㆍ양광도로 보내어 병을 핑계대고 북쪽 정벌에 나가지 않거나, 자제와 노예로 대행시킨 자는 모두 왜적을 막게 하고, 피하는 자는 군법으로 처단하고 그 재산을 적몰하게 하였다. ○ 우가 영비와 함께 부벽루에 가서 활을 쏘기도 하고, 격구를 하기도 하다가, 말 기르는 사람을 죽이려 하니, 최영이 죽이지 말라고 청하였다. 우가 이르기를, "당신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면서 왜 나에게는 금하는가." 하였다. 영이 아뢰기를, "신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부득이하여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우가 좌우에 눈짓하여 마침내 말 기르는 사람을 베었다. ○ 경진일에 좌우군이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威化島)에 둔을 쳤는데, 도망하는 군사가 길에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았다. 우가 곳곳에서 베도록 명령하였으나 그치게 하지는 못하였다. ○ 최영이 우에게 청하기를, "전하는 서울로 돌아가시고, 노신이 여기서 장수들을 지휘하겠습니다." 하였다. 우가 이르기를, "선왕께서 해를 당한 것은 경이 남정(南征)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찌 감히 하루라도 경과 함께 있지 않을 수 있는가." 하였다. ○ 갑신일에 대동강 물이 붉어졌다. ○ 이성(泥城) 원수 홍인계(洪仁桂)와 강계(江界) 원수 이억(李薿)이 먼저 요동 지경에 들어가서 죽이고 노략하여 돌아오니, 우가 기뻐하여 금정아(金頂兒)와 무늬 있는 비단을 내려 주었다. http://www.koreanhistory.or.kr/cgi-bin/mi/mi_k_cont.cgi?clas=01&ctitle=mkt0150503&type=&gg=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 분류별 > 고전국역총서 >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제35권 > 공양왕 2 임신 4년(1392), 대명 홍무 25년 ○ 6월에 도평의사사에서 전 판삼사사 우현보와 그 아들 지밀직사사 홍수(洪壽), 전의 부령 홍부(洪富), 판사 홍강(洪康), 상호군 홍득(洪得), 정랑 홍명(洪命), 종친 남평군(南平君) 화(和), 수연군(壽延君) 규(珪), 영원군(寧原君) 기(琦), 익산군(益山君) 서(敍), 복원군(福原君) 자(諮), 순영군(順寧君) 담(耼), 보령군(保寧君), 복(福)과 문하찬성사 안익(安翊), 판개성부사 김남득(金南得), 밀직사 최을의(崔乙義), 전 청주절제사 왕승귀(王承貴), 전 밀직부사 도흥(都興), 지신사 안원(安瑗), 좌대언 유정현(柳廷顯), 우대언 허응(許膺), 판사 박흥택(朴興澤), 전 연안부사 안준(安俊), 내부령 신원필(申元弼), 총랑 최함(崔咸), 내관 강인부(姜仁富)를 잡아 먼 지방으로 귀양보내고는, 경력 장지화(張至和)를 시켜서 왕에게 아뢰기를, "현보 등이 여러 번 죄를 범하였으나 관대한 용서를 지나치게 받았는데도 오히려 마음을 고치지 않고, 다시 난을 일으키려 하여 화란의 기미가 급박하였으므로 미처 아뢰지 못하고 현보 등을 외방으로 나누어 귀양보내었습니다. 신이 듣건대, 난신ㆍ적자는 사람마다 이를 벨 수 있다 하므로 감히 먼저 일을 행하고 뒤에 아룁니다." 하였다. ... ○ 조준을 판삼사사로, 공정왕(恭靖王 정종(定宗))을 삼사 우사로, 남은을 동지밀직사사로, 권중화(權仲和)를 상의찬성사로, 윤호(尹虎)와 성석린(成石璘)을 찬성사로, 이인민(李仁敏)을 판개성부사로, 경의(慶儀)와 정희계(鄭熙啓)를 문하평리로, 김사형(金士衡)을 삼사 좌사로, 윤사덕(尹師德)을 판밀직사로, 김용초(金用超)ㆍ김을귀(金乙貴)ㆍ이의(李薿)ㆍ김균(金稛)을 모두 밀직 부사로 삼고, 이행(李行)을 예문관 제학으로 삼았다.